거짓말탐지기 조사, 정말 받아야 할까요?

형사 사건, 특히 목격자가 없는 성범죄나 사기 사건의 피의자로 조사를 받다 보면 수사기관으로부터 ‘거짓말탐지기 검사(심리생리검사)’를 권유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피의자 입장에서는 ‘기계가 내 진실을 밝혀줄 것’이라는 기대로 덜컥 동의하기도 하고, 반대로 기계의 오류가 걱정되어 거부하고 싶지만 ‘거부하면 범인으로 의심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대한민국 법원에서 거짓말탐지기 결과는 제한적으로만 인정되며, 유죄의 직접적인 증거로 사용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수사 단계에서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대법원 판례를 바탕으로 거짓말탐지기의 정확한 증거능력과 검사 요청 시 올바른 대응 전략에 대해 깊이 있게 다뤄보겠습니다.
대법원이 말하는 거짓말탐지기의 증거능력

많은 분들이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거짓말탐지기에서 거짓 반응이 나오면 바로 유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대법원은 거짓말탐지기 결과의 증거능력(법정에서 증거로 쓸 수 있는 자격)에 대해 매우 엄격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이 요구하는 3가지 전제 조건
대법원 판례(2005도130 등)에 따르면,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가 증거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이 완벽하게 충족되어야 합니다.
- 첫째, 장비의 성능: 거짓말을 할 때 일어나는 생리적 변화를 정확하게 측정하고 기록할 수 있는 장치여야 합니다.
- 둘째, 검사관의 전문성: 검사관이 생리적 반응을 정확히 분석하고 판독할 수 있는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갖추어야 합니다.
- 셋째, 검사 환경의 객관성: 피검사자의 심리적 안정이 보장되고, 답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외부 요인이 완전히 배제된 환경에서 검사가 진행되어야 합니다.
\”위와 같은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 한,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는 형사소송법상 증거능력이 없으며, 설령 증거능력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그 신빙성(증명력)은 극히 낮게 평가된다.\” – 대법원 판례 요지
실무적으로 변호인들은 위 세 가지 요건 중 하나라도 결여되었음을 주장하여 증거 채택을 막는 전략을 사용합니다. 특히 피의자가 극도로 긴장한 상태이거나 수면 부족 등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진행된 검사는 ‘환경의 객관성’ 결여로 탄핵당하기 쉽습니다.
수사 단계와 재판 단계에서의 차이점
법적으로는 증거능력이 약하다고 해도, 수사 현장에서는 이야기가 다를 수 있습니다. 경찰과 검찰은 왜 거짓말탐지기를 권할까요? 바로 ‘수사의 방향성’을 잡기 위해서입니다.
1. 수사기관 (경찰/검찰)
수사기관 입장에서 거짓말탐지기 결과는 유력한 참고자료입니다. 만약 ‘거짓’ 반응이 나온다면 수사관은 피의자의 진술을 불신하게 되고, 유죄를 입증하기 위한 다른 증거 수집에 더욱 집중하게 됩니다. 반대로 ‘진실’ 반응이 나온다면 혐의를 벗겨주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혐의없음(증거불충분)’ 처분을 받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2. 법원 (재판)
재판에서는 원칙적으로 유죄의 인정 증거로 쓰이지 않습니다. 다만, 정황증거나 진술의 신빙성을 탄핵하는 자료로는 활용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피고인이 일관되게 억울함을 주장하지만 거짓말탐지기에서 거짓 반응이 나왔고, 다른 간접 증거들이 혐의를 뒷받침한다면 판사의 심증 형성에 불리한 영향을 미칠 수는 있습니다.
거짓말탐지기 검사, 거부하면 불이익이 있나?
가장 많이 하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 \”검사를 거부하면 범인으로 단정 짓지 않을까요?\”
거부권은 피의자의 권리입니다
거짓말탐지기 검사는 임의수사 방식이므로, 피의자의 동의 없이는 강제로 진행할 수 없습니다. 헌법상 ‘진술거부권’과 연결되는 맥락에서, 검사를 거부한다고 하여 법률적으로 불이익을 주거나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수사관이 \”떳떳하면 왜 못 받습니까?\”라고 압박하더라도, 이는 수사 기법일 뿐 법적 강제성은 없습니다.
실무적인 관점에서의 주의사항
하지만 법리적인 것과 별개로, 수사관의 ‘심증’에는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 없이 강력하게 거부할 경우, 수사관은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의심을 품고 더욱 강도 높은 조사를 진행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거부할 때는 무조건적인 거부보다는 합리적인 이유를 제시하는 것이 좋습니다.
- \”현재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심장이 두근거리고 신경안정제를 복용 중이라 정확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 \”변호인의 조언에 따라 불확실한 기계적 판단보다는 객관적인 물적 증거로 소명하겠습니다.\”
위와 같이 건강 상태나 법적 조언을 이유로 정중히 거절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검사를 받는 것이 유리한 경우 vs 불리한 경우
무조건 거부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며, 상황에 따라 전략적인 선택이 필요합니다. 아래 표를 통해 본인의 상황을 점검해 보세요.
| 구분 | 검사를 받는 것이 유리한 경우 | 검사를 피해야 하는 경우 |
|---|---|---|
| 증거 상황 | CCTV, 목격자 등 객관적 증거가 전혀 없고 오로지 상대방의 진술만 있는 경우 (진실게임 양상) | 이미 불리한 물적 증거가 확보되어 있거나, 본인의 진술에 모순이 있는 경우 |
| 심리 상태 | 억울함이 커서 당당하며, 평소 긴장을 잘 하지 않고 침착한 성격인 경우 | 극도로 예민하거나 불안 장애가 있는 경우, 심장 질환이 있는 경우 |
| 사건 성격 | 성범죄(강제추행 등)에서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경우 (무죄 입증의 수단이 제한적일 때) | 복잡한 사실관계가 얽혀 있어 질문에 대해 ‘예/아니오’로 명확히 답하기 힘든 사건 |
특히 성범죄 사건의 경우, 피해자의 진술만이 유일한 증거일 때 피의자가 결백을 증명할 방법이 마땅치 않습니다. 이때는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통해 ‘진실’ 반응을 얻어내어 수사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승부수를 띄우기도 합니다.
FAQ: 자주 묻는 질문 정리
Q. 거짓말탐지기 정확도는 얼마나 되나요?
일반적으로 90% 이상의 정확도를 보인다고 알려져 있으나, 100%는 아닙니다. 10%의 오차(위양성 또는 위음성)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법원에서도 이를 맹신하지 않는 것입니다. 특히 억울한 사람이 긴장하여 ‘거짓’으로 나오는 오류가 가장 치명적입니다.
Q. 검사 도중 너무 긴장해서 결과가 잘못 나오면 어떡하죠?
검사 전 ‘사전 면담’ 시간이 있습니다. 이때 본인의 긴장 상태, 복용 약물, 수면 부족 등을 충분히 어필해야 합니다. 또한, 검사관은 기본 질문(이름, 나이 등)을 통해 피의자의 평상시 생리 반응 기준점을 잡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긴장은 오류를 유발할 수 있으므로, 심신이 불안정하다면 검사를 연기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낫습니다.
Q. 한 번 나온 결과를 번복하거나 재검사를 받을 수 있나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습니다. 한 번 ‘거짓’ 반응이 나와 수사 기록에 남게 되면, 이를 뒤집기 위해 사설 기관에서 재검사를 받아 제출하더라도 수사기관은 공인된 기관(국과수, 경찰청)의 결과를 더 신뢰합니다. 따라서 첫 검사 결정에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결론: 신중한 판단과 전문가 조력의 필요성
거짓말탐지기는 ‘양날의 검’입니다. 잘 쓰면 억울함을 푸는 열쇠가 되지만, 잘못되면 스스로를 찌르는 칼이 될 수 있습니다. 단순히 \”나는 떳떳하니까\”라는 생각만으로 섣불리 검사에 응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만약 수사기관으로부터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요구받았다면, 즉시 답변하기보다는 \”변호인과 상의해보고 결정하겠다\”고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좋습니다. 현재 확보된 증거가 무엇인지, 사건의 쟁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의뢰인의 심리 상태가 검사에 적합한지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뒤에 결정해야 합니다.
형사 사건은 초기 대응이 결과의 80%를 좌우합니다. 불확실한 기계에 운명을 맡기기보다, 법률 전문가의 조력을 통해 탄탄한 방어 전략을 수립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