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를 지배했던 ‘기사(Il Cavaliere)’의 마지막 장부

2023년 6월, 이탈리아 정치와 미디어 산업을 수십 년간 호령했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타계하면서 전 세계의 이목은 그의 정치적 유산뿐만 아니라, 그가 남긴 천문학적인 개인 재산에 쏠렸습니다. ‘일 카발리에레(Il Cavaliere, 기사)’라 불리며 이탈리아 현대사에서 가장 논쟁적이면서도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던 그는 단순한 정치인을 넘어 거대한 비즈니스 제국을 건설한 장본인이기 때문입니다.
베를루스코니의 재산은 단순한 현금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탈리아 최대의 미디어 그룹, 출판사, 은행, 그리고 프로 축구 클럽을 아우르는 거대한 권력의 집합체입니다. 사후 공개된 유언장과 자산 평가액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였으며, 복잡한 가족 관계만큼이나 상속 과정 또한 드라마틱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베를루스코니가 남긴 구체적인 재산 목록과 그 가치, 그리고 후계 구도를 결정지은 유산 상속의 내막을 자세히 파헤쳐 보겠습니다.
베를루스코니의 총 재산 규모: 숫자로 보는 제국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사망할 당시,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브스(Forbes)와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들이 추산한 그의 순자산은 약 68억 달러(한화 약 9조 원)에 달했습니다. 이는 이탈리아 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부호의 위치를 확고히 하는 수치였습니다.
주요 자산 포트폴리오
그의 부는 다각화된 포트폴리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그 중심에는 지주회사인 핀인베스트(Fininvest)가 있습니다. 주요 자산 내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 미디어 & 방송: MFE(MediaForEurope, 구 Mediaset) –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아우르는 거대 민영 방송사
- 금융: 메디오라눔(Banca Mediolanum) – 자산 관리 및 은행업을 영위하는 알짜 계열사
- 출판: 몬다도리(Mondadori) – 이탈리아 최대의 출판 그룹
- 스포츠: AC 몬차(AC Monza) – AC 밀란 매각 후 인수한 프로 축구 클럽
- 부동산: 전 세계에 흩어진 호화 빌라와 저택들
참고: 베를루스코니는 과거 명문 구단 AC 밀란을 31년라 소유하며 ‘축구 구단주’로서의 명성도 높았으나, 2017년 중국 자본에 약 7억 4천만 유로에 매각하며 막대한 차익을 실현한 바 있습니다.
왕관의 보석: 핀인베스트(Fininvest)와 지분 구조
베를루스코니 재산의 핵심은 단연 가족 지주회사인 핀인베스트입니다. 핀인베스트는 단순한 회사가 아니라 베를루스코니 가문의 ‘금고’이자 ‘통제실’ 역할을 합니다. 사망 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핀인베스트 지분의 61.2%를 직접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비즈니스 제국의 핵심 계열사 가치
| 계열사 명 | 업종 | 추정 지분 가치 | 비고 |
|---|---|---|---|
| Banca Mediolanum | 금융/은행 | 약 20억 유로 이상 | 그룹 내 가장 큰 현금 창출원 중 하나 |
| MFE (Mediaset) | 방송/미디어 | 약 10억 유로 내외 | 이탈리아 민영 방송 시장 독점적 지위 |
| Mondadori | 출판 | 약 3억 유로 | 교육 및 도서 시장 점유율 1위 |
이 외에도 핀인베스트는 극장, 영화 제작 등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투자를 해왔습니다. 투자자들은 베를루스코니 사후 핀인베스트가 매각될지, 아니면 자녀들에 의해 유지될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웠습니다. 결과적으로 회사는 ‘매각 없는 경영 승계’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호화 부동산과 사치품 컬렉션

기업 지분 외에도 베를루스코니의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유형 자산들 또한 천문학적인 가치를 자랑합니다. 그는 생전 이탈리아 전역과 해외 휴양지에 수많은 호화 별장을 소유했습니다.
주요 부동산 리스트
- 빌라 산 마르티노 (Villa San Martino): 밀라노 인근 아르코레에 위치한 그의 주거지이자 정치적 본거지. 수많은 밀실 회동이 이루어진 역사적 장소입니다.
- 빌라 체르토사 (Villa Certosa): 사르데냐 섬에 위치한 거대한 휴양 시설로, 블라디미르 푸틴, 조지 W. 부시 등 세계 정상들을 초대한 곳으로 유명합니다. 인공 호수와 화산 모형까지 갖추고 있으며, 가치만 수천억 원에 달합니다.
- 기타 부동산: 카리브해 안티구아의 별장, 로마의 고택, 프랑스 칸의 별장 등 전 세계 주요 휴양지에 거점을 두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전용기 3대, 헬리콥터, 그리고 ‘모닝 글로리’라는 이름의 48미터급 요트를 포함한 다수의 선박을 소유했습니다. 예술품 컬렉션 또한 방대하여 창고에 보관된 예술품만 2만 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일부는 가치가 높지 않은 대량 구매품이라는 후문도 있습니다.
유언장 공개: 5명의 자녀와 경영권 승계의 비밀
베를루스코니의 유산 상속이 세간의 주목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복잡한 가족 관계 때문입니다. 그는 두 번의 결혼을 통해 총 5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 첫 번째 부인 소생: 마리나(Marina), 피에르 실비오(Pier Silvio)
- 두 번째 부인 소생: 바르바라(Barbara), 엘레오노라(Eleonora), 루이지(Luigi)
‘합법적 유류분’과 ‘가용 지분’의 마법
이탈리아 상속법에 따라 유산의 3분의 2는 5명의 자녀에게 균등하게 ‘유류분(Legittima)’으로 배분되어야 합니다. 핵심은 베를루스코니가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나머지 3분의 1, 즉 ‘가용 지분(Quota Disponibile)’의 행방이었습니다.
공개된 유언장에 따르면, 베를루스코니는 이 가용 지분을 첫째 마리나와 둘째 피에르 실비오에게 몰아주었습니다. 이로써 두 사람은 핀인베스트 지분의 합계 약 53%를 확보하게 되어, 다른 세 명의 자녀들과 상관없이 그룹 전체의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장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경영 분쟁을 막고 그룹의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베를루스코니의 치밀한 계산이 깔린 결정으로 해석됩니다.
마지막 연인과 측근들에게 남겨진 유산
베를루스코니는 자녀들 외에도 그의 마지막을 지켰던 연인과 측근들에게 막대한 현금을 유산으로 남겼습니다. 이는 유언장이 공개되자마자 이탈리아 현지 언론의 1면을 장식했습니다.
1억 유로의 유산, 마르타 파시나
그가 사망할 당시 법적인 배우자는 아니었으나 ‘상징적 결혼식’을 올리고 마지막까지 곁을 지켰던 33세의 하원의원 마르타 파시나(Marta Fascina)에게는 무려 1억 유로(약 1,400억 원)의 유산이 할당되었습니다. 이는 웬만한 중견기업의 가치와 맞먹는 금액입니다.
또한, 그의 동생인 파올로 베를루스코니에게도 1억 유로가, 오랜 친구이자 몬차 축구단 운영에 기여한 마르첼로 델루트리에게는 3,000만 유로(약 420억 원)가 유증되었습니다. 이러한 현금 유증은 상속인(자녀)들이 지불해야 하는 형태로 남겨져, 상속 과정에서 자녀들의 현금 동원력에 대한 우려를 낳기도 했습니다.
FAQ: 베를루스코니 유산에 대해 자주 묻는 질문
Q. 베를루스코니의 유산 상속세는 얼마나 되나요?
이탈리아는 다른 서구 선진국에 비해 상속세율이 매우 낮은 편입니다. 직계 비속(자녀)의 경우 공제 한도를 초과하는 금액에 대해 단 4%의 세율만 적용됩니다. 한국의 상속세율(최대 50%)과 비교하면 천국에 가까운 수준이라, 자녀들의 세금 부담은 자산 규모 대비 크지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Q. 자녀들 간의 유산 분쟁은 없었나요?
우려와 달리 5명의 자녀들은 아버지의 유언을 전적으로 수용하고 합의 서명을 마쳤습니다. 핀인베스트의 경영권이 장녀 마리나와 장남 피에르 실비오에게 넘어갔지만, 나머지 세 자녀도 막대한 배당금과 자산을 받았기 때문에 법적 분쟁으로 비화되지 않고 깔끔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
Q. AC 몬차 축구단은 어떻게 되나요?
베를루스코니가 말년에 애정을 쏟았던 AC 몬차는 일단 가족 소유로 남아있으나, 경영 효율화를 위해 매각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현재는 유족들이 구단 운영에 대한 비용 부담 등을 고려하여 외부 투자자를 찾거나 매각을 고려하는 단계에 있습니다.
결론: 한 시대의 종말과 새로운 자본의 흐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재산은 단순한 부의 축적을 넘어, 미디어와 정치가 결합했을 때 얼마나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료와도 같습니다. 그의 사망으로 9조 원에 달하는 자산은 재분배되었고, 핀인베스트 제국은 이제 2세 경영인 마리나 베를루스코니와 피에르 실비오의 손에 맡겨졌습니다.
많은 이들이 우려했던 ‘왕자의 난’ 없이 비교적 평화롭게 마무리된 상속 과정은, 베를루스코니가 생전 사업가로서 얼마나 철저하게 사후를 대비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제 베를루스코니라는 거목은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자본과 기업들은 여전히 이탈리아 경제와 미디어 생태계의 심장부에서 강력하게 박동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베를루스코니 가문의 2세들이 이 막대한 유산을 어떻게 운용하며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적응해 나갈지 지켜보는 것은 글로벌 비즈니스계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될 것입니다.